1. 나의 에너지 총량은?

나는 아직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넘쳐났다. 초등학생 때는 정말 안 해본 게 없다. 수영, 태권도,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오카리나, 로봇 조립… 해보고 싶은 거라면 다 시도해보았다. 손재주도 조금 있어서 소묘, 뜨개질, 바느질, 클레이 공예 등 아주 많은 것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공부의 늪에 빠질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나 역시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농구 수행평가이다. 체육시간에 제한 시간 이내에 농구 골대에 넣는 공의 개수로 점수를 매기는 평가가 있었다. 하루를 줘도 한 개조차 못 넣던 몸치인 내가, 아침 7시에 등교해서 혼자 연습하고 주말에도 공원에 가 연습한 결과 무려 7개를 넣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때의 열정은 아주 대단한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하루는 화학 시간에 발표를 위해 생화학 전공책을 뒤져보고, 다음 날은 온종일 수학 문제집만 풀고… 손과 머리가 가는 대로 살았다.

보통 공부와 각종 평가에 시달리다 보면 슬럼프가 오기도 하는데, 나도 이를 피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수학 공부가 질리면 화학 공부를 하고, 내신 공부가 하기 싫으면 비교과 활동에 참여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의욕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지만,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타입이다.

3. 송도에서는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번 학기에 송도를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연세대 합격 후에 아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고, 다들 입사하지 않는다고 하길래 ‘비대면이니까 다들 안 들어가겠지 뭐~’라고 생각하고 입사 신청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막상 학기가 시작되고 보니 송도 기숙사에 들어온 친구들이 꽤나 많았고, 다같이 어울려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가끔 송도에 놀러 와서 동기들이랑 밥을 먹긴 했지만,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늦은 시간에 ‘캠부신신’ 루트에 포함된 1호선을 탈 자신이 없어서 항상 이른 시간에 먼저 가야 했다.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하나뿐인 대면 수업인 태권도를 위해 월요일마다 도로 위에서 4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진리관 D 계단의 고양이들을 매일 볼 수 없음과, 진리관 B와 치계에서 먹는 야식에 동참할 수 없음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추가 입사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입사 신청을 해서 들어오게 됐다. 다른 학우들보다 1학기동안 송도 기숙사에서 있을 수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누구보다 알차게 보낼 것이라 다짐했다.

기숙사 방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방 대청소와 짐 정리이다. 본가에서 지낼 때는 청소를 정말 안 해서 엄마한테 잔소리를 듣곤 했는데, 기숙사 생활을 계기로 청소하는 습관을 들여보려 한다. 생전 처음 직접 화장실 청소도 해보고, 방도 열심히 꾸며봤다. 퇴사할 때까지 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주변 환경 정리에 에너지를 들이는 습관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한다.

두 번째로 할 것은 바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리고 진로 찾기이다. 사실 이 말은 아빠가 자주 하시는 말인데, 굉장히 동의한다. 지금이 수능 공부에서 벗어나서 취업 준비라는 고비를 만나기 전까지 가장 자유롭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이기 때문에, 스무 살 무렵에 쌓을 경험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값지다. 많은 연세인들이 송도에서의 추억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런 것들 때문인 듯하다.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점도 잘 챙겨보고, 공강인 날에는 하루 종일 잠도 자보고… 한 마디로 말해, 열심히 놀아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보고, 열심히 공부도 해볼 것이다.

하지만 마냥 놀기만 할 수는 없다. 나는 19년동안 뼛속까지 이과로 살아왔는데, 어쩌다 보니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농담처럼 “문이과 통합형 인재 되지 뭐~”라고 하며 지원했는데, 막상 입학하고 나니 경영은 제약이 없는 학과라 생각보다 막막하다. 수시와 정시 전형 모두 이공계 쪽으로 준비했던 터라 갖고 있는 지식도 모두 관련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고, 정말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마케팅’, ‘창업’ 이런 것 말고는 어떤 분야로 나아가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지도 교수님과의 면담을 신청해볼까 생각 중이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고, 경영 전공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도 알고 싶다. 그리고 원래 희망했던 화학 쪽으로 복수전공을 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또한 걸어서 5분만에 언더우드 기념 도서관에 갈 수 있으니 책도 많이 찾아보고, 하우스나 대외활동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다 보면 나에게 딱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찾지 못한다 해도, 미래의 내가 무엇을 하든 아주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