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념과 맞닿아 있는 말이나 구절이 있다면?
모든 일에 감사해라
그것이 나의 모토가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나는 스스로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스스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많이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늦잠을 잔다거나, 과제를 놔두고 놀러 나간다거나 가끔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가끔이 아닌가..?) 물론 기대를 저버리고 나면 실망한다. 나는 정말 스스로를 아끼고,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말 많이 기대하고, 정말 많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괴로워하고 좌절을 겪는 수험 생활에서 그들이 고통스러운 이유도 아마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수험 생활 때 그런 고통을 많이 느꼈지만, 지금 돌아보기에 대학을 합격하고 나서가 더 힘들다고 느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대학을 들어가고 난 후에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취소되면서 나는 주로 집에서 수업을 들었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나는 집에서는 공부를 전혀 못 한다. 하지만 과제나 수업 모두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제대로 학교 수업을 소화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방안에서 시간을 죽이기만 하는 스스로가 한심했고, 대학에 들어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허함을 많이 느꼈다. 이십대 초반의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라는 선생님들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 인생의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대 속의 나와 전혀 다른 현실의 나에게 실망하고 비난하고 나를 갈아먹다 갈아먹다 남은 게 없다고 느껴질 때 즈음 재수를 결심하고 자퇴를 했다. 재수를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단추를 잘 못 끼웠으면 풀고 다시 껴야지. 내가 기대하는 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 재수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했고, 이제야 좀 사람이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개인의 감상과 별개로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바뀐 교과과정에서 3개월 만에 처참한 성적을 끌어올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이 참 한결같이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은 성적이 나올 때마다 아주 착실히 해냈다. 수능도 이제 두 번째인데 설마 떨겠냐는 생각과 달리 수험장에 가서 마킹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손이 떨렸다. 결과는 진부하게도 삼수를 하게 된다.
나는 현역 시절부터 삼수 때까지 아주 좋아하고 존경해서 계속 강의를 들었던 국어 선생님이 계신다. 삼수생 시절 그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한 동화를 들려주셨다. “옛날에 한 소녀가 거미줄에 걸려있는 요정을 구해줬단다. 요정이 구해준 대가로 원하는 질문에 한 번 답해주겠다고 했어. 대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그러자 소녀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물어봤어. 현명하지? 선생님 같으면 다음에 오를 주식이 뭔지 물어봤을 텐데. 요정이 귓속말로 답을 하자, 소녀는 알겠다는 듯이 방긋 웃었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소녀가 할머니가 돼서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할머니에게 그 방법을 물어봤어. 할머니가 뭐라 하셨게? 모든 일에 감사해라. 그리고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활짝 웃고 계셨대.”
정말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꼭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왜 대학을 가고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알겠다. 나는 감사함을 몰랐구나.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다시 한번 입시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하루 세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도 나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 준 기회구나. 내가 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구나.
그 이후로 나는 정말 모든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할 것.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도 포기했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충실히 공부했다면 성적은 자연스레 오를테니 시험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험생활 동안 별다른 걱정 없이, 별다른 고통 없이 보냈다. 수능을 앞두고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한 만큼 나온다. 내가 이만큼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자. 그동안 노력한 나에게 감사하고, 결과를 받아들이자. 세 번의 수능에서 유일하게 떨지 않았다. 그리고 살면서 치룬 모든 시험 중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자연스레 나의 삶의 모토는 “모든 일에 감사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