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난지 두달도 체 안됐을 때 중국으로 갔다. 부모님의 직장이 중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 속의 나는 이미 중국어를 어느정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라온 환경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배웠던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까지 약 7년동안 중국 남부에서 살았다. 날씨도 더웠지만 너무나 많았던 도마뱀들과 곤충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어린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 쯤에 상하이 근처의 도시로 이사를 갔다. 처음 겪는 이사는 아니었지만 정이 든 도시와의 이별은 처음이였기에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물론 새로운 곳에 와서도 친구들을 사귀고 즐거운 추억들을 쌓았지만초등학교를 체 졸업하기도 전에 또 한번의 전학을 겪어야만 했다. 사실 이 때의 전학은 너무 아쉬웠던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이전의 시절은 기억이 가뭄가뭄 나지만 이 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고 나름 친했던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락 조차 닿지 않는 친구들이지만 그 시절의 나를 다듬어줬다는 점에서 너무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또 한번의 전학은 내가 철이 빨리 들게한 계기가 되었다. 집안사정이 넉넉치 않은 편이다보니 부모님에게 뭘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이 때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대학을 다니며 주말엔 알바를 하면서 최대한 부모님에게 손을 안 벌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돌아보면 이러한 과거에서 지금의 내 마음가짐이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렇게 새롭게 전학온 학교는 이전의 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그동안 중국친구들과 학교를 다녔지만 처음으로 여러 외국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다. 물론 학교는 진짜 작고 우리반에는 학생이 4명정도 밖에 없었지만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더욱 돈독하게 지낼 수 있게된 계기였던 것 같다. 작곡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 역시 이 때의 음악 시간이다. 선생님께서 기말고사 대신 반 친구들과 함께 작곡하는 것을 대체과제로 내시면서 처음으로 DAW라는 것을 다뤄보게 되었고 음악을 진심으로 공부했던 것 같다. 물론 처음 만든 곡인 만큼 퀄리티가 정말 안 좋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 또한 이 때 처음으로 학교 수업이 재밌다고 느꼈다.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었지만 처음으로 자유로운 수업분위기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내 의견이 존중을 받는다는 것이 정말 새로웠던 것 같다. 여러 문화의 친구들과의 토론은 늘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수업은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재밌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는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불가피하게 전학을 가야만 했다. 학교에 고3과정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학교에서의 추억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이 많았지만 학교운영진들이 좋은 분들 이었다고는 못 할 것 같다. 어쨌든 불가피한 사유로 전학을 가게된 나는 나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을 했다. 물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대면 수업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집에 있으면서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책을 즐겨 읽지만 정말 고3때 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아직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기에 책 속의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읽게돈 여러 정치서적들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고 대학에 입학해 정치를 보다 깊이 배우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해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전공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 했고 오랫동안 외국에 살면서 배운 것들도 정말 많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연세대에 합격했을 때는 정말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처음으로 모국에서 공부할 수있다는 떨림과 과연 내가 적응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해 있었지만 인생 처음으로 한국에서 할 학교생활이 기대되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서 대부분의 수업들이 비대면이어서 아직 많은 학교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했지만 다음 학기에는 가능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