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 5살 때 아빠의 직장 때문에 중국으로 강제 유학을 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생활해도 별것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며 또 어쩌다 보니 내 지역에서 유명한 중국 학교로 입학을 했다. 나는 그 학교에 유일한 한국인이었으며 "니하오 (안녕하세요)", "팅부동 (못 알아듣겠어요)" 이 두개만 알고 있던 나는 당연하게도 다른 학우들과 소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선생님과도 소통할 수 없어 보디랭귀지만 늘었다. "잘해낼 수 있을까? 잘 배울 수 있을까?"를 떠나서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때 당시 성적이 좋았는지, 어떻게 그 상태에서 4학년까지 살아남고 중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큰 의문이다.


2015년

-> 중국 학교에서의 교육이 점점 어려워지고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엄마에게 전학을 요청했다. 그래서 5학년 때 작은 국제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모종의 이유로 학교가 사라졌고 6학년 2학기 때 다른 국제 학교로 입학을 했다. 참 신기하게도 이때도 언어의 장벽으로 애를 먹었다. 중국 학교에서도 5학년 때 전학 간 그 학교에서도 외국인과 영어 대화는 많이 해보지 못했고 문법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I am 으로 되어야 할 것을 I are 로 쓴 적이 있다.) 계속 성적을 잘 받았던 나는 처음으로 60점대를 받았다. 좌절하는 동시에 내가 중학생이 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6학년부터 중학생이었다) 비록 막 전학 온 상태임에도 여러 경험을 해보았다. 언어민 선생님과 프로젝트도 해보고 외국인 남자 친구도 사겨보고 스페인어도 배워보고 운동회도 해보았다. (중국 학교에서는 운동장이 그냥 장식이었고 작은 국제학교는 운동장이 없었다.) 그때 당시 나는 정말 외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별 볼 일 없는 애였는데 어떻게 주목받았는지 모르겠다. 성적도 안 좋고 행실도 그다지 좋진 않았는데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상을 탄 기억이 있는데...우리 반 1등과 별로 차이 안 나는 수의 상장을 받은 기억이 있다.도대체 왜...? 생각해볼수록 잘나가는 기억이 많이 떠오르니 이때가 나의 전성기인 것 같았다.


2020년

-> 국제학교에서 11학년이 되었을 때이다. 9~10학년 때부터 상태가 슬슬 안 좋았는데 이때 상태가 제일 심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다툼도 많이 하고 사건 사고에 자주 휘말렸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학교 삼당 선생님이 나를 부르며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고등학교로 올라온 후 과목도 어려워져가고 성적은 떨어지고 받는 상장의 수는 현저히 떨어지고 부모님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매일매일을 불안함에 잠겨있었다. 대학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기를 좋아했던 나는 모종의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얼굴 혹은 피부를 드러내기를 싫어했고 여름에도 후드를 입고 다녔다. 미래가 암담했다, 무엇이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학교 옥상 문 앞, 차디 찬 바닥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다 언젠간 내 삶이 다시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생겼다 사라졌다 했다.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헛생각이었다, 이 상태는 고3 때까지 지속이 되고, 실생활까지 제대로 못 하는 정도가 된다. 그래서 졸업 단체 사진에 나만 없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못하게 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시기였다. 이때를 그래프로 표현했을 때는 선이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일 것이다.


2021년

-> 그 힘들던 고3을 버티면서 입시 시기로 들어갔다. 비록 우리 학교에 전문적인 입시 상담 선생님은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나는 9월 학기 신청에 연세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에 붙었다. 비록 1지망 과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 어떠리. 이 학부에 내가 듣고 싶었던 과가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 기숙사 생활을 했다.(그때 8월 30일이 입학 일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생일이라서 너무 좋았다) .5학번에 글인이라고 불리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대학 생활 앞에 무슨 일이 생길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는 듯이 동아리도 하고 여러 RC 활동도 하고 학교 시설을 마음껏 이용해보았다. 또한, 공부도 놓지 않아서 석차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공부하면서 학교생활을 즐기는 동안 3월 학기 결과가 나오는 날짜가 되었다. 사실 그때 당시에 있었던 학과도 마음에 들었기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결과를 확인하니 내가 원하는 1지망 과인 컴퓨터과학과에 붙었다. 비록 상담 선생님은 힘들 수도 있다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주저 없이 컴퓨터과학과 신입생으로 다시 학교를 입학하였다. 사실 후회 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래도 글로벌인재학부도 꽤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선택을 한 나는 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컴퓨터과학과 학생으로서의 나의 인생은...지금도...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