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어릴 때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행운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아서 아닐까 한다. (사실 별생각 없이 살아서이기도 하지만...) 농부셨던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냥 해맑게 마당을 뛰어다녔던 기억을 제외하면 8살 이전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딱히 기억할 만큼 힘들거나 인상적이었던 일은 없던 것 같다.

초등학교 ~ 중학교 시절

우리 어머니는 문자중독이시다. 당신 학창 시절부터 책을 매우 좋아하셨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어머니는 항상 책을 읽고 계셨다. 당시에 우리 집에는 TV도 없었고, 나는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서(조기 교육에 실패한 나는 비록 컴퓨터과학과지만 지금도 컴퓨터를 잘 못한다.) 자연스레 어머니를 따라 책을 즐겨 읽었다.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사서 선생님과 같이 퇴근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독서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주변 친구들에 비해 아는 게 많았고, 공부도 좀 했었다.(초등학교 공부가 뭐 어려운게 있겠냐만은...) 부끄럽지만 당시에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았다. 실제로 재수도 좀 없었던 것 같다. 오만한 나를 보면서 어머니는 내가 우물 속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우리 동네는 매우 시골이라 근처에 있는 중학교는 20명씩 두 반 밖에 없었다. 누나와 나의 교육을 위해 우리 집은 좀 더 큰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거기도 시골이라 마땅한 학원이 없어 더 큰 옆 도시의 학원으로 나를 보내셨다. 그 학원은 학생의 학습 수준별로 5개의 반을 나누어 가르쳤는데, 들어갈 당시 나는 제일 낮은 반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재수가 없었던 나는 자존심이 꽤 상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우유를 3개 신청해 밥 먹는 대신 우류를 마시면서 점심시간에 공부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한 개씩 볼 때마다 더 높은 반으로 올라가 중학교 2학년은 가장 높은 반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중2병에 걸렸다.

2019년, 고등학교 시절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공부는 하기 싫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시켜서 겨우겨우 학원만 나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비슷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돼서야 가고 싶은 대학이 생기고, 목표가 생겨서 좀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업보로 당연히 수능 성적은 좋지 않았다. 결국 목표하는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뭐 실망하고 좌절하지는 않았다. 너무 지쳐서 그럴 기운도 없었거니와 나름 좋은 학교에 붙었기 때문에 만족하고 입학했다.

2020년, 첫 대학 생활

대학에 입학하고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퍼졌다. (지금 생각해도 증말 화가 나는 녀석이다.) 예쁜 캠퍼스와 즐거운 대학 생활을 꿈꾸며 입학한 나에게 입학식 취소, 새터 취소, 학교 모임 금지, 비대면 수업은 너무 부당한 처사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기에도 나는 목표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막상 대학에 오니 뭘 해야 할지 전혀 몰랐었다. 이전에도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당시에는 옆에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이 눈에 보였는데, 이번에는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방안에서 계속 가라앉는 느낌만 들었다. 하루종일 방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시간을 죽이기만 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답답하셨는지 말씀하셨다. “너희 아빠가 너 첫 대학 등록금 넣은 날 밤에 나한테 그러더라. 자기 이 정도면 꽤 열심히 산 것 같다고. 내일 죽어도 딱히 후회는 없다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시면 항상 현관문 앞에서 인사를 드린다. 그러면 정말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들어오시다가도 활짝 웃어주신다. 그 미소가 좋아서 인사를 했었는데, 방안에서 늘어져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스스로가 미웠다. 그 환한 미소를 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내일 죽어도 후화가 없다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나? 지금 나는 뭘 하는 거지? 그렇게 스스로를 갉아먹고 갉아먹다 더 이상 갉아먹을 게 없을 때쯤, 재수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2021년 재수

사실 재수할 때는 할 이야기가 없다. 기숙학원에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했으니. 앞에서 얘기한 대로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이후로는 나의 오늘에 충실함을 목표로 삼고 정말 열심히 공부만 했다. 때때로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냥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2022년 두 번째 대학 입학

조금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들은 생각은 아 인생이 정말 재밌는 거구나 하고 조금 웃겼다. (이런 말을 하면 으슥한 야산에 묻힐까 두렵기는 하지만) 나는 입시를 시작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연세대학교에 가겠다고 상상한 적이 없다. 심지어 컴퓨터과학과는 더더욱. 고등학교 3년 내내 생화학을 진로로 삼았고 첫 번째 대학교도 화학과로 입학했다. 당장 2년 전의 나는 전혀 관심도 없던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인생이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는 생각에 좀 웃겼다. 그동안은 항상 내 미래가 어떻게 될까 두렵고 불안했었는데, 이제는 앞으로는 또 어떤 상상치 못 한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감사할 줄 아는 대학 생활이 내가 생각하기에 건강하고 행복한 대학 생활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복한 대학 생활을 누리기를 바란다.